한해·문세윤 '비행기' 뮤직비디오 제작기 - AI 후반작업으로 흐린 날씨를 노을로
어떤 곡은 리메이크 자체가 부담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브랜뉴뮤직의 의뢰로 제작한 한해·문세윤 '비행기 (feat. 츄)'의 공식 뮤직비디오입니다. 저희와 브랜뉴뮤직은 5년 넘게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해 온 사이인데, 이번 곡은 그중에서도 시작 전부터 무게가 남달랐습니다.
'비행기'는 2000년대 초 거북이가 남긴 곡입니다. 세대를 관통하는 향수가 짙게 밴 노래이고, 그래서 그동안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원곡의 감성을 제대로 살린 리메이크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음원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뮤직비디오가 그 기대에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도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영상 감성의 핵심이던 노을 해변을 찍는 날, 하늘이 완전히 흐려버린 것. 이 글은 그 위기를 AI 영상 후반작업으로 통과한 기록입니다.

PROCESS ① 기획 (2주) - 부재를 콘셉트로 바꾸다
기획은 곡을 뜯어보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3분 20초의 곡을 랩·가창·후렴 성격에 따라 13개의 보컬 섹션으로 초 단위로 분해하고, 각 섹션의 에너지에 맞춰 씬을 배정했습니다. 랩 파트는 드라이브의 속도감으로, 가창 파트는 주유소와 골든아워의 감성으로, 후렴은 곡의 정서가 가장 부풀어 오르는 구간으로 설계했습니다.
콘셉트의 출발점은 뜻밖의 제약이었습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츄가 영상 촬영에는 함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보통은 난감한 조건이지만, 저희는 이 부재를 오히려 서사의 중심 장치로 뒤집었습니다. 해외여행(비행기)을 떠나려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갑자기 함께하지 못하게 되고, 남은 두 사람이 즉흥적으로 국내 로드트립을 떠난다는 90~2000년대 레트로 여름 휴가기. 곡 제목이 '비행기'인 이유를 마지막에 회수하는 구조였습니다.
부재한 멤버는 등신대(입간판)로 함께 여행합니다. 트렁크에서 등장하고, 안전벨트를 매고, 랩 파트를 립싱크하고, 모래찜질을 하고, 모든 사진에 함께 찍힙니다. 폴더폰 문자와 백미러 키링, 사진 콜라주 속 빈자리에 붙은 포스트잇까지, 부재를 오히려 계속 존재하게 만드는 장치들을 촘촘히 깔았습니다. 실제로 공개 후 이 등신대 연출은 댓글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포인트가 됐습니다.
전체 톤은 쨍한 여름의 디지털 질감을 기본으로 하되, 특정 파트에서만 VHS·캠코더 질감으로 전환하는 이중 설계를 잡았습니다. 레퍼런스로 국내 로드트립 영상들을 폭넓게 리서치했고, 차별점은 두 사람의 코미디 케미와 부재 캐릭터 장치,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 구조에 뒀습니다.
PROCESS ② 촬영 (1일) - 데이터로 고른 날, 하늘이 배신하다
촬영은 레트로 SUV 한 대와 함께 서해안 일대를 도는 하루짜리 로드트립으로 진행했습니다. 기획 2주가 촘촘했던 덕에, 현장은 설계도를 빠르게 실행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촬영 날짜는 감(感)이 아니라 계산으로 정했습니다. 영상 감성의 정점을 노을 해변에 두기로 했기 때문에, 만조와 일몰이 겹치는 날을 조석 주기로 역산해서 촬영일을 잡았습니다.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노을이 수면에 반사되는, 딱 그 순간을 노린 스케줄이었습니다. 감성 피크 컷들을 전부 이 시간대에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배신했습니다. 촬영 당일, 특히 해변에서의 촬영분이 전량 흐린 톤으로 찍혔습니다. 노을은커녕 우중충한 잿빛 하늘이었죠. 데이터로 완벽하게 계산한 날짜였지만, 날씨만큼은 계산할 수 없는 변수였습니다. 예전이라면 이 시점에서 선택지는 둘뿐이었습니다. 재촬영을 하거나(일정과 예산상 불가능), 흐린 감성으로 타협하거나(곡의 청량함과 정면충돌). 저희는 세 번째 길을 택했습니다. 흐린 원본을 일단 전부 찍어 두고, 날씨는 통째로 후반작업에서 만들어 내는 것.
PROCESS ③ AI 영상 후반작업 - 흐린 해변을 진한 노을로
이 프로젝트 후반작업의 중심은 흐리게 찍힌 해변을 진한 노을로 되살리는 AI 영상 변환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보시겠습니다.
핵심 원칙을 먼저 짚겠습니다. 인물은 AI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티스트의 얼굴은 초상권과 직결되는 데다, 어떤 AI 툴도 인물을 통째로 변환하면 미묘한 왜곡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VFX의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먼저 컷에서 인물을 제거해 빈 배경만 남긴 클린 플레이트를 만들고(원본 카메라 무빙은 그대로 유지), 그 배경만 노을로 변환한 뒤, 별도로 마스킹해 둔 원본 인물을 다시 위에 합성하는 방식입니다. 즉 하늘과 바다는 AI가 새로 그렸지만, 화면 속 사람은 촬영장에서 찍힌 그대로입니다. 기술과 초상권을 동시에 지키는 접근이었습니다.
날씨 변환의 노하우는 프롬프트 전략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sunset(노을)"이라고 지시했는데, 그러면 AI가 화면 안에 없던 태양을 멋대로 그려 넣었습니다.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과 광원이 어긋나 비현실적인 컷이 나오기도 했죠. 해법은 태양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카메라 뒤에서 들어오는 빛", "배경에 보이는 광원 없음", "부드러운 정면광"처럼 빛의 결과만 서술하자 화면 안에 억지 태양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노을 톤만 남았습니다.
변환 강도(strength)도 컷 성격별로 세밀하게 나눴습니다. 인물이 크게 잡힌 컷은 낮게, 풍경 위주 컷은 조금 더 높게, 한 번에 바꾸는 요소는 최대 한두 개로 제한했습니다. 욕심을 부려 프롬프트에 여러 지시를 한꺼번에 넣으면 씬 전체가 엉뚱하게 변형된다는 걸, 수많은 반복 속에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테스트는 저해상도로 빠르게 돌리고, 방향이 확정된 컷만 고해상도로 최종 렌더하는 2단계 운용으로 시간과 비용을 아꼈습니다.
날씨 복구를 넘어 특수효과도 AI로 저비용으로 해결했습니다. 낮에 찍은 드론 컷을 밤으로 통째로 바꾸고 불꽃놀이까지 얹는 작업이 대표적입니다.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화면 속 차의 원색을 보존하고, 불꽃을 추가하는 과정을 한 단계씩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이라면 데이 포 나이트 그레이딩에 불꽃 CG 합성까지 붙는, 시간과 비용이 큰 작업입니다.
소품 화면도 AI로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 폴더폰의 문자 화면은 이미지 생성 AI로 만든 뒤 영상화해 LCD 특유의 백라이트 글로우까지 살렸고, 옛 공중파 뉴스의 자막바 그래픽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해 크로마키로 합성했습니다. 시대의 질감을 만드는 디테일들을 실물 소품 제작 없이 화면 안에서 해결한 것입니다.
물론 AI가 만능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이 프로젝트에서 다시 확인한 기준은 명확합니다. AI는 없던 분위기를 만들어 더하는 데 강하고, 정밀한 오브젝트 추가·제거에는 약합니다. 드론 컷에 비행기를 정확히 합성하거나, 화면 속 불필요한 물체를 지우거나, 스파클러의 불빛을 자연스럽게 통제하는 작업은 AI가 자꾸 화면을 과하게 건드렸습니다. 그런 컷은 미련 없이 애프터이펙트 같은 전통 후반 도구로 정공법 처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거치며 저희가 정립한 AI 후반 운영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잘 나온 결과물은 다시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한 번의 변환에서 바꾸는 요소는 한두 개로 제한한다. 셋째, AI로 안 되는 건 빠르게 전통 방식으로 전환한다. AI 영상제작은 버튼 하나로 끝나는 마법이 아니라, 도구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알고 컷마다 배분하는 새로운 종류의 숙련 작업이라는 것이, 이 뮤직비디오가 저희에게 남긴 결론입니다.
결과 - 조회수 130만, 그리고 20년의 향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130만 회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숫자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댓글의 온도였습니다.
저희도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봤습니다. "이걸 이렇게 말아줬네" 하는 감탄부터, "터틀맨 작사·작곡이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게 리메이크가 되네", "거북이형 너무 그립습니다, 리메이크해줘서 고맙습니다" 같은 뭉클한 댓글까지. 원곡을 아는 분들껜 그때의 향수를, 처음 듣는 분들껜 여름의 청량함을 드린 것 같아 만드는 사람으로서 뿌듯했습니다. 부재한 멤버를 등신대로 채운 장면에는 "등신대만 나오는 거 개웃기다", "출연료 줘야 할 듯"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는데, 걱정거리였던 제약을 웃음 포인트로 뒤집은 게 제대로 통한 순간이었죠. 그리고 완전히 흐렸던 그 해변은, 최종 영상에서 아무도 날씨 사고가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진한 노을이 되어 있었습니다.
클라이언트인 브랜뉴뮤직도 결과에 크게 만족했고, 5년 넘게 이어 온 신뢰 관계 위에서 이번 프로젝트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좋은 파트너와의 오랜 협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뮤직비디오는 물론, AI 영상 후반작업을 활용한 영상 제작이 궁금하시다면 제작 문의로 연락 주세요. AI 후반작업으로 촬영의 한계를 넘은 또 다른 사례는 자이르네 브랜드 필름 제작기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제작사와 함께해야 할지 고민 중이시라면 제작사를 고르는 기준도 참고해 보세요.


